우리 삶의 목적은 거룩함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등장함므로서 인류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무신론자였던 버트란트 러셀은 "하나님이 없다면 삶의 목적에 대한 질문도 무의미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자신 삶을 더 높고 위대함을 통해서 생각하고 싶어합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삶의 목적이 됩니다.
현대인 성경 레위기 19장 2절에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거룩함을 이루는 길입니다.
우리말 사전에서 '거룩'은 "뜻이 높고 위대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거룩'이라는 말은 '코데쉬'와 '카데쉬'라는 히브리 말로 표현합니다.
코데쉬는 '분리', 카도쉬는 '다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거룩함을 이루는 '분리와 다름'은 우리 시대가 혐오하는 '차별'이 아닙니다.
'분리'란 죄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말하고 '다름'은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죄와 사망에서 분리하여 거룩하게 구별해 주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 주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거룩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복을 주셔서 거룩한 길 곧 예수님을 아는 일과 믿는 일에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위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주를 사랑함으로 영생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래로는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의 실천으로 죄를 용서함으로서 화평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우리 삶의 목적을 거룩함으로 삼으면 하늘의 일을 땅에서 이루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저와 우리 성도들을 창민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창민교회의 모토가 되는 말씀은 이사야 51장 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이사야 51:2절 말씀)
여기서 '창성'의 뜻은 아브라함을 구별하여 주신 은혜의 복이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창민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을 환영하고 주의 거룩한 길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너희는 나에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를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레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