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9장 12-38절
12.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13.그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이 곳을 멸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15.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 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16.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자비를 더하심이었더라
17.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 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18.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주의 종이 주께 은혜를 입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에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20.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21.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네가 말하는 그 성읍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22.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읍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23.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번영하는 도시 몰락하는 도시'라는 책이 있습니다. 원제는 Age of the City입니다. 도시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가지는지 소개하는 책입니다. 어느 도시가 번영하고 어느 도시가 몰락할까요? 하나님이 세우신 의와 공도를 행하는 도시는 번영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도시들은 몰락합니다. 크고 훌륭한 도시들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고 없어지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곳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 영원한 곳이요 참된 진리가 있는 곳입니다. 주후 125년 로마는 요르단에 제라쉬라는 도시를 세웠습니다. 아직도 도시에는 원형극장이 남아 있는데 동시에 4000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극장은 무대에서 동전을 떨어뜨리면 맨 뒤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잘 설계가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신전이 다섯 개나 건설되었는데 로마의 통치가 영원할 것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도시가 한 번의 지진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성은 가인이 만든 에녹성입니다. 가인은 에덴 동편에 에녹성을 만들었습니다. 동편에 성을 쌓은 것은 해가 뜨는 곳으로 에덴동산보다 더 좋은 곳이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성 안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 타인을 괴롭게 하는 곳이었습니다. 도시의 원형이 되는 에녹성은 은혜로 세워진 곳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어디보다 복음이 필요한 곳이 성읍이요 도시들입니다. 교회가 도시에 세워진다는 것은 그 도시의 복음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D. A 카슨은 “사람은 결코 자기의 문화를 뛰어넘어서 복음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통해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천국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려 한다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와 유대 문화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롯도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를 통해서 말합니다. 창세기 19:7-8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은 결혼하지 않은 두 딸을 내어주어야 그들이 하는 악을 막을 수 있다고 고발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19: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롯을 이방인 취급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을 악하다고 판단하는 재판관 노릇을 한다고 하여 롯을 해하려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롯을 구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잠시 동안의 구원이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곧 유황의 불구덩이로 변하게 됩니다. 천사들은 롯과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려고 성읍에 왔습니다. 천사들이 롯에게 이르되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롯과 함께 했던 자들을 구원하시길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는 이유는 이들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서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고통 받는 자들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습니다. 특히 의인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시기 때문에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와 객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악한 자들로 인해서 부르짖는 소리가 높아지게 됩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는 그 성읍 자체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이 성읍 안에 있는 것이 밖에 있는 것보다 더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사위들에게 함께 성읍을 나갈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나 예비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여기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다는 말 ‘차하크’ 역시 웃다는 뜻입니다. 웃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이 말은 비웃다는 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생활에 젖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롯의 예비 사위들 역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롯과 성읍 사람들을 구별하는 단어가 ‘거류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25:6 말씀에 보면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결코 섞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 때문에 위험에 빠진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롯은 동이 틀 때까지 지체하였습니다. 그가 지체하자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떠나기 전 가스 불은 꺼졌나? 창문은 잘 잠겼나? 여기저기 살피느라 롯이 머뭇거렸습니다.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롯과 아내와 두 딸들의 손을 잡아서 성 밖으로 끌어 내었습니다. 롯이 성 밖으로 나왔을 때 천사들은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성읍 생활에 익숙해진 롯은 산으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산이나 들이나 믿음의 모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성읍에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보다 작더라도 성읍이 더 안전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롯의 오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롯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은 롯이 간구한대로 작은 성읍을 통해서 구원해 주십니다. 그 성읍의 이름이 소알성읍입니다. 이 소알 성읍은 이후에 모압의 도시 중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지만 롯은 성읍을 더 의지했습니다. 롯은 고린도전서 1:25 말씀에 나온 것처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한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어느 작은 도시에 빵 가게가 두 집 있습니다. 그런데, 한 집은 항상 새로운 신선한 빵을 팔고 있는 반면, 다른 한 집은 하루쯤 지난 빵을 내놓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새로운 빵을 파는 집으로 갔습니다. 묵은 빵을 내놓는 집은 전날의 남은 빵을 다시 팔기 때문에 재고가 쌓여서 항상 묵은 빵을 내놓게 됩니다. 새로운 빵을 팔려면 예전의 빵을 과감하게 버려야만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빵을 내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빵을 만드는 지혜보다 더 뛰어난 지혜입니다. 이것이 본능과 지혜의 차이입니다.
물고기는 낚싯바늘에 걸리면 본능적으로 낚싯줄과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도망칩니다. 이때 줄은 팽팽해지면서 바늘은 더 깊이 박히게 됩니다. 노련한 낚시 프로는 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면서 걸린 물고기가 지칠 때까지 손맛을 즐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물고기는 이 ‘밀당’에 쉽게 말려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이용합니다. 낚시꾼 쪽으로 빠르게 헤엄칩니다. 팽팽했던 줄이 갑자기 느슨해지면 낚시꾼은 “뭐지?” 하며 당황합니다. 이때가 낚싯바늘에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입니다. 물고기는 입에 박힌 바늘을 빼버리고 보란 듯이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위기에 몰리면 기업도 인생도 당황하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방향에 대한 결정입니다. 위험한 순간을 피해 보려 도망치면 끝까지 발목을 잡는 올무가 됩니다. 지금의 위기가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면 하나님의 편에서 위기를 이겨야 합니다.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의지하던 것을 떠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들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