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38-43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2.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3.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미국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는 월가의 상징물이 하나 서 있습니다. 이 상징물은 “황소상”입니다. 황소는 풍요와 부를 상징하기 때문에 전 세계의 주식을 거래하는 장소에 떡하니 서 있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이 황소상을 만지면 부와 명예를 얻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뉴욕 뿐만 아니라 중국 상하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전세계 금융시장마다 황소상이 서 있습니다. 황소숭배의 기원은 바벨론입니다. 황소를 뜻하는 영어 불(Bull)은 성경의 바알(baal)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바알은 바벨탑을 세웠던 느므롯에서부터 비롯된 이름입니다. 바벨론 니므롯에게서 우상숭배가 시작되어 전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 역시 이 황소 숭배 사상이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신 아피스는 처음에는 다산과 번영의 신이었다가 나중에는 죽은 자들을 보호하는 신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들어가진 2개월만에 아론에게 금 송아지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금송아지가 애굽에서 자신들을 인도한 신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어째서 황소가 다산과 번영의 상징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맡은 관원장이 복직한지 만 이년이 지났을 때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바로가 꿈에 나일 강가에 서 있는데 아름다고 살진 암소 일곱이 강에서 올라왓습니다. 강에서 올라온 이 일곱 암소들은 갈대숲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흉하고 마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올라와서 살진 암소 일곱 마리를 잡어먹었습니다. 바로가 잠시 깨어났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줄기에서 무성한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나온 가느다란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바로가 두 번의 꿈을 꾸고 아침을 맞이 했는데 그가 심란했습니다. 분명 신의 계시가 담긴 예사롭지 않은 꿈인데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꿈을 해석할만한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이들에게 꿈을 말했지만 그 꿈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 때 술맡은 관원장이 이 년전에 만났던 요셉이 생각났습니다. 개역한글에 보면 술맡은 관원장이 이년 전의 사건을 생각할 때 감옥에 갇혔던 사건 자체가 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합니다. 창세기 41: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나의 허물을 추억하나이다.” 술맡은 관원장은 떡 굽는 관원장과 함께 친위대장의 감옥에 갇혔을 때 요셉이 꿈을 바르게 해석한 것을 기억했습니다.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의 이름도 알지 못해서 히브리 청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처음으로 히브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아브람을 지칭하는 독특한 명칭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아브람을 이브리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 사람이라는 뜻은 아브람의 후손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철저히 구별되어 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히브리 청년이 자신들의 꿈을 각각 해석했는데 그 해석한 대로 자신은 복직되고 떡굽는 관원장은 매달렸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사람을 보내서 요셉을 불러냈습니다. 요셉이 수염을 깎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드디어 꿈쟁이 요셉이 새로운 옷을 입고 바로 왕 앞에 섭니다. 바로는 요셉이 꿈을 잘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바로는 요셉에게 자신의 꿈을 들려주었습니다. 꿈을 들은 요셉은 바로가 꾼 두 개의 꿈은 원래 하나라고 알려줍니다. 바로의 꿈은 앞으로 애굽에 칠년동안 대풍년이 오고 그 다음 칠년동안은 대환란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대환란이 얼마다 대단한 것인지 앞선 풍년은 기억도 못할만큼 망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가 두 번이나 이 꿈을 꾼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바로가 꾼 꿈의 전말이었습니다.그런데 요셉은 꿈을 해석한 것으로 끝내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지 대비하도록 했습니다. 요셉의 지혜는 곧 애굽의 경제정책으로 이어집니다.
요셉은 앞으로 다가올 기근을 위한 세가지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첫째, 명철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세워 애굽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둘째, 감독관들을 두어 애굽의 곡식 오분지 일을 거두게 했습니다. 셋째, 거두어들인 곡식들은 각 성에 쌓아두게 했습니다. 요셉이 이같은 조언을 한 것은 애굽이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요셉이 모든 일을 마치자 바로와 신하들에게 큰 감동이 있었습니다. 특히 바로는 요셉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창세기 41장 38-40절의 말씀입니다.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 자가 없도다 40.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도, 시위대장의 감옥에서도 동일하게 행동했습니다만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앞에서 요셉을 높이셨습니다. 바로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사용하는 인장 반지를 빼서 요셉의 손에 끼웠습니다. 그리고 새 옷을 입고 있는 요셉을 또 다시 세마포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그리고 버금 수레에 그를 태워서 애굽을 두루 다니게 했습니다.
요셉은 중요한 순간마다 옷이 사용됩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혔기 때문에 형제들의 시기를 받습니다. 형제들이 채색옷을 벗기고 피를 뭍혔기 때문에 야곱은 요셉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겉옷을 붙잡았기 때문에 누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가 요셉을 찾는 날 옷을 갈아입습니다. 옷은 그의 허물과 수치를 가리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허물과 수치를 드러나게도 합니다. 요셉은 어떤 옷을 걸치든지 오직 그 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옷은 그의 중심이 알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으로 자신의 허물을 가리길 원합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가르키는 말이, 루키즘(lookism)입니다. 이 말뜻은,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외모지상주의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런 문화 속에 완전히 휩싸여 있습니다. 얼마 전 늦은 저녁에 성수동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청년들로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외모에 집착하면 할수록 마음은 더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구약에서 옷이 신분을 상징한다면 신약에서 옷은 변화와 구원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이 말씀은 우리가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옷이 벗겨지셨고 부활하신 무덤에 세마포만 남겨 두셨습니다. 예수님도 입으셨던 의복을 통해서 자신의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가리워 주셨숩니다. 시편 32:1 “그러므로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옷 입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7절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세례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을 뜻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라는 내육신의 장막을 벗기면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신분의 변화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과 성품까지 성령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11-14 11.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그리스도를 옷입은 사람은 에베소서 4:24절 말씀처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게 됩니다. 이는 자신의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변화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들을 교회로 모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요 성도의 의복은 그리스도입니다. 이에 대한 말씀 두 곳을 함께 찾아서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3:26-29 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 골로새서 3:9-14 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3.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