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스겔 16장에서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보이신 사랑은 마치 길 가에 버려진 핏덩이같은 갓난 아이를 데려다가 정성을 다해 키우는 어머니의 진한 모성애와도 같다.
이러한 모성애같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버려진 존재에서 왕후와 같이 화려한 존재가 되어버린 예루살렘,
그러나 예루살렘은 자신의 화려함만을 믿고 우상을 만들어 행음을 저지르며 방자하게 살아가며 온갖 세상의 이방 나라들과 몹쓸 짓을 저지른다. 마치 간음한 여인의 모습처럼 말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그러한 인생들을 향해 음란한 행위 그대로 심판하시사 자신들의 행위가 얼마나 후회되고 수치스러운 짓인지를 깨달아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방탕하고 음란한 예루살렘을 다시 용서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몇 가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포인트를 발견하게 된다.
1. 본문에서 예루살렘은 길 가에 버려진 핏덩이 같은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어머니는 헷 사람이며 아무도 돌보지 않아 길 가에 버려졌지만 피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살아있어야 할 이유는 물로 피투성이같은 존재를 씻기어 기름을 바르고 아름다운 옷과 장식구를 입히시며 영화로운 관을 씌워주실 참된 돌봄의 존재가 계시기 때문이다. (겔 16:1~14) 지금 내 인생이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분이 누구이신가를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심지어는 나를 사랑해준다는 누군가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이 들 때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사랑해주신 분이 누구이신지를 말이다. (시 27:10, 롬 5:8) 그걸 안다면 우린 피투성이라도 살아있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겔 16:6)
2.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만극하신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우상을 만들고 이방나라와 행음하는 배은망덕의 짓을 저지르고 만다. 나는 어떠한가? 주님을 믿노라하고 심지어는 자격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목사직의 기름부음까지 받아 이 자리까지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사랑하기 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영적 음란의 죄를 저지르고 있지는 않았는가? 간음이 우상숭배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결국 의도적인 여호와를 망령되이 여기는 죄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 묵상을 통해 발견하면서 다시금 나의 죄를 보게 되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진노중에도 우리의 회복을 간절히 원하시는 주님 앞에 나는 무엇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에스겔 16장의 말씀을 묵상하며 발견하게 된다.
"너의 모습 그대로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는 검다 하지만 나에겐 아름답단다..."
찬양 [검으나 아름답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