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1:44-57
44.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나는 바로라 애굽 온 땅에서 네 허락이 없이는 수족을 놀릴 자가 없으리라 하고
45.그가 요셉의 이름을 사브낫바네아라 하고 또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그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니라 요셉이 나가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라
46.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53.애굽 땅에 일곱 해 풍년이 그치고
54.요셉의 말과 같이 일곱 해 흉년이 들기 시작하매 각국에는 기근이 있으나 애굽 온 땅에는 먹을 것이 있더니
55.애굽 온 땅이 굶주리매 백성이 바로에게 부르짖어 양식을 구하는지라 바로가 애굽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요셉에게 가서 그가 너희에게 이르는 대로 하라 하니라
56.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매 요셉이 모든 창고를 열고 애굽 백성에게 팔새 애굽 땅에 기근이 심하며
57.각국 백성도 양식을 사려고 애굽으로 들어와 요셉에게 이르렀으니 기근이 온 세상에 심함이었더라
애굽의 바로가 히브리 청년 요셉을 축복합니다. 히브리는 말은 “건너편에서 온 사람” 곧 “가나안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또 요셉은 그의 어머니 라헬이 지어준 이름으로 ‘그가 더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라헬에게 더 많은 자녀를 주실 것을 소망하면서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런데 바로가 이 히브리 청년 요셉을 총리로 삼을 때 사브낫 바네아라는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사브낫 바네아”는 애굽식 이름인줄 알고 있지만 “차프나트파네아흐”라는 히브리어식 이름으로 두 가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그가 살았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셔서 요셉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요셉은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사브낫 바네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항상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될 일을 바로를 통해서 요셉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바로에게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여 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모스 3:7의 말씀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러나 바로의 점술가와 지혜자들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에스겔 13:6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는 자들이 허탄한 것과 거짓된 점괘를 보며 사람들에게 그 말이 확실히 이루어지기를 바라게 하거니와 그들은 여호와가 보낸 자가 아니라 이 두 가지 뜻을 통해서 바로가 요셉을 사브낫 바네아라고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는 성령이 충만한 사람 요셉에게 걸맞는 짝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 대상은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옛 이름은 헬리오 폴리스입니다. 헬리오은 태양, 폴리스는 도시로 헬리오 폴리스는 태양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헬리오 폴리스는 이집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이 “헬리오폴리스”가 과거에 온이라고 불렸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총리와 제사장이 한 가문이 되면 바로에게 큰 위협이 됩니다. 그러나 바로는 총리인 요셉과 제사장 가문을 결혼시킴으로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요셉이 이방 제사장과 결혼한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오히려 아스낫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50.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은 삼십세에 아스낫과 결혼하여 흉년이 들기 전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습니다. 이 두 아들들의 이름도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뜻은 이미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므낫세는 위로를 얻었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창성하게 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문자 그대로의 뜻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요셉은 자녀들의 이름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합니다. 요셉은 누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지나온 고통의 세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과 미움의 쓴 뿌리를 잊어버렸습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요셉이 과거의 쓴 뿌리를 안고 산다면 원수 갚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요셉은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에 대한 일도, 형들의 배신도, 애굽의 고난도 모두 잊었습니다. 잊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사건이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게 됩니다. 망각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일을 합니다. 망각은 불필요한 기억을 없애서 우리 머리를 맑게 합니다. 첫째, 우리가 모든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 뇌는 과부하가 걸려 정말 중요한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둘째, 망각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잊게 하여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가 큰 아픔과 슬픔을 당해도 그 감정을 잊고 다시 삶을 도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망각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합니다. 이웃간에 발생한 갈등과 오해도 시간이 지나서 잊혀질 때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만약 갈등과 상처를 계속 기억한나면 인간관계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망각을 통해서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고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픔과 슬픔을 통해서 중요한 교훈과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반드시 개인과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이것을 기억하여 기념하라고 하신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 때문에 고통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이제 ‘므낫세’가 있기 때문에 창성하게 하신 ‘에브라임’이 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종으로 팔려 왔다가 시위 대장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단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누구도 요셉만큼 번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이 뜻하신 일을 이루기 위해서 구슬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요셉은 사명을 열심히 감당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다 기록할 수가 없었습니다. 48.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그러한 가운데서 에브라임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야곱의 족보에 들어있습니다. 족보란 그 가문의 뿌리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애굽의 족보에 들어야 합니다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야곱의 족보에 들어야 합니다. 야곱의 족보는 언약의 족보요 하나님의 자녀의 족보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이후에 나올 내용이지만 야곱은 손을 엇갈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했습니다. 요셉은 이미 아버지 집에서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장남과 차남의 순서가 바뀌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내가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손을 엇갈려서 축복했습니다.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이 더 하나님의 일을 크게 감당했습니다. 므낫세는 반으로 지파가 나뉘어서 요단 동편과 서편에 살았습니다. 에브라임 지파에는 여호수아, 사사 드보라, 사무엘과 같은 훌륭한 인물들이 있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에도 사사 기드온이 있었지만 그 힘이 약했습니다. 오늘 요셉의 족보에서 가장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아스낫입니다. 아스낫은 이방인 제사장의 딸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잠잠히 요셉을 도와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한 여인이었습니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아스낫은 세겜에게 추행을 당한 디나의 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전승입니다.
아스낫의 의미를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스낫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예표합니다. 요셉이 이방여인을 신부로 맞이한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아스낫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복된 여인입니다. 아스낫은 그 때나 이때나 믿는 자들에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둘째, 칠년 흉년 이전에 결혼한 것처럼 교회도 대환란이 있기전 은혜의 자리로 옮겨주십니다. 주님은 죄와 상관없이 우리를 데려 가실 것이고, 대환란이 있기 전에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대환란 전에 주님의 부름을 받아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살전4:16-17). 아스낫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죽음을 보지 않고 변화되어 주님을 만나게 될 교회의 예표입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아스낫은 칠년 흉년이 오기 전 말할 수 없는 풍성함을 경험한 여인입니다. 아스낫처럼 우리도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열매 맺는 삶을 살면서 그 약속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10:10). 오늘 우리도 아느낫처럼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님의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주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십니다. 주님의 신부로서 복된 인생을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