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1 주일설교 "이만한 믿음" 마태복음 8:1~13

이종명 0 567

2026.02.01 주일설교 "이만한 믿음" 마태복음 8:1~13ㅣ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이만한 믿음

마태복음 8:1-13

1.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2.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5.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6.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7.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8.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9.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 계명을 받은 것처럼, 사람들도 예수님께 새 계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 말씀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7장 1절“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태복음 7장 12절에 나오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하신 율법과 동일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비판이라고 하는 “크리노”는 우리가 평소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크리노는 구별한다, 선택한다, 평가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이 판단이 지나치게 되면 비판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리노라는 말에는 “남을 고소한다”, “소송을 건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게 되면 나도 똑같이 나를 판단하게 됩니다. 어느 마을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늘 의심이 많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곱게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길을 가다 누군가가 웃고 지나가면 “저 사람은 나를 비웃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고 긍정적이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 웃고 지나가면 “저 사람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좋은 일이 있나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자기 생각에 잠겨 웃었을 뿐, 두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깊이 고민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C. S 루이스입니다.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법칙 즉 도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누가 너에게 이렇게 하면 좋겠어?” “거긴 내 자리에요, 내가 먼저 맡았다구요.” “왜 먼저 밀고 들어오는거야?”“당신이 먼저 약속했잖아요” 보통의 경우 이 말들은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하는 경우에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상대방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게 됩니다. 서로 옳고 그름에 대한 법칙을 알고 하는 말입니다. 때로 상식적인 대화가 안되는 분들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올바른 행동에 대한 기준이 비슷합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변명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올바르게 살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쁜 행동에는 변명을 하고 좋은 행동은 자기 공으로 돌리려고 합니다. 중요한 요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려고 하는 놀라운 습성이 있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모든 사람은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살지만, 모두가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순이 세상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엇이 모순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마라톤 선수들이 결승점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1, 2, 3등이 나란히 열심히 달리다가 제일 앞에 가던 사람이 갑자기 넘어졌습니다. 바로 뒤에서 달리던 2등 선수가 그대로 달리면 1등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등으로 달리던 선수가 멈춰서서 넘어진 선수를 도와주었습니다. 그러자 3등으로 뛰던 선수가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등을 원망할 수 있수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2등을 비웃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3등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2등을 칭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3등이 행운아라고 칭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1등이 넘어져서 안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익을 얻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행동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행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기준에 이끌려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로마서 8:12-15 1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우리는 우리의 지각이나 판단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영으로서만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성령 안에서 판단해야 할까요? 로마서 8:26-28 26.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판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24 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20.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21.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오시자, 무리들도 따라서 내려왔습니다. 예수님이 내려오셨을 때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 합니다. 또 가족을 떠나서 나병환자들끼리 살아야 합니다. 당시 나병은 불치병이라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병환자는 사람들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나병환자를 만지는 것은 율법에서 금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부정한 것을 피하거나 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 놀랍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주님이 원하시면 깨끗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해결함을 받으려면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자마자 나병환자의 나병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병환자가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권고하셨습니다. 4.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오직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예수님이 나병환자를 고쳐주셨지만,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의 판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나병환자는 제사장의 판단을 받아,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오셨을 한 백부장이 찾아옵니다. 이 백부장은 로마의 백부장입니다. 백부장은 “하인이 중풍병으로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아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세 번에 걸쳐서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첫 번째 고백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겠다는 것은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고백은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직접 가지 않고 말씀으로 고칠 수 있다고 한 고백은 로마 백부장이 유일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이 함께 계시지 않아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울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세 번째 고백은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백부장의 고백을 들어보면 백부장은 자기 주인에게 그리고 자기 부하에게도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백부장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예수님을 대접했습니다. 백부장은 마태복음 7:12에 말씀하신 황금률의 실제 모델이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은 마태복음 12:35의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선한 사람 백부장은 예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소원을 들어주실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10.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11.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12.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13.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로마 백부장은 자기 하인을 고쳤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믿음이 상달되면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도 로마 백부장처럼 상달될 믿음을 가지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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