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주일설교 "믿음으로 세우는 도시" 누가복음 18:1~8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믿음으로 세우는 도시
누가복음 18:1-8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I.법을 세우는 일
차량을 운전하는데 횡단보도 쪽에 초등학교 1-2학년 정도되는 노란 옷을 입은 귀여운 아이가 서 있었습니다. 보행신호로 바뀌자 아이가 손을 들고 길을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반대쪽에 차가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 보도 위로 폴짝 뛰어 올라갔습니다. 반대쪽 차량이 멈춰서자 아이는 조금 뒤에 길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차들이 다 서 있는데도 끝까지 손을 들고 반대쪽으로 건너갔습니다. 법은 융통성이 없고 다소 딱딱하게 느껴지는데, 잠시동안 교통법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잘못했을 때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규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에 바람 잘 날이 없게 됩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법이 있는 것처럼, 가정에도 규율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다가 부모에게 중재를 요청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가정의 부모들이 가정의 중재를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분명 동생이 잘못했는데 형에게만 “동생이 어리니까 형이 참으라”고 말합니다. 형이 품어주라는 말은 옳은 말이지만 동생의 잘못을 징계하지 않으면 동생은 점점 더 엇나가게 됩니다. 형은 형의 입장에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 때 부모는 엄정한 재판관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재판관의 역할을 감당하는 부모의 마음은 형과 동생의 입장을 모두 살피기 때문에 두 배로 힘듭니다. 일시적인 자녀의 갈등을 잘 감당하면 더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서도 그의 말씀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 것처럼 사랑과 징계가 함께 조화를 이룰 때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히브리서 12: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이유는 세상에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12:7-8 말씀입니다. 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하임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이들이 있으리요
8.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성도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그의 자녀임을 깨닫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II.도시에 믿음이 필요한 이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믿음의 연단을 받고 점점 더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징계는 분명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는 점에서 분명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사는 자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는 기도는 믿음을 가진 자들의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어김없이 낙심이 찾아오게 됩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장 1절의 말씀입니다. 1.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믿는 자들에게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신 비유가 불의한 재판관 비유입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이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다루는 재판관이 불의하다는 것 자체가 역설입니다.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런데 이 도시에는 재판장 못지 않은 역설적 인물이 있으니 한 과부입니다. 이 과부도 재판장과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같이 찾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구합니다. 불의한 재판장과 원한에 사무친 과부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얼마가지 못해서 금방 끝나게 됩니다.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과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원한을 풀어줄 것을 믿었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굳건한 믿음 때문에 날마다 괴로웠습니다. 불의한 재판장은 과부의 믿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불의한 재판장도 과부의 믿음이 진심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과부가 불의하다면 아무리 간청해도 들어줄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와 같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뜻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8:6-8 6.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불의한 재판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자들의 심정을 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지 않으시고 기도하는 자들의 마음을 반드시 풀어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셔서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하시고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비유의 말씀을 맺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천종호 판사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과거 200년간 근대 계몽주의 신화가 인간과 문화를 지배해 왔습니다. 이 신화의 핵심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입니다. 톰 라이트라는 신학자는 근대 계몽주의는 하나님의 죽음을 내세워 프랑스는 ‘무신론’으로, 미국에서는 ‘이신론’으로 공산주의 국가는 ‘공산당이 신’이 되고 영국은 ‘국가교회’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계몽주의 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것이 상대주의, 이기주의, 개인주의, 소비주의, 신자유주의가 나타나서 사회가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극단적 회의와 불안, 염려 두려움이 온 세상을 덮습니다. 그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왔는데 이 사상은 우리를 더욱 원자로 쪼각 쪼각을 내서 더 혼란스럽게 되었습니다.이로 인해서 각자도생하기 위해서 나오다 나오다 한 것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약자, 소수자들과 ‘인권 운동이’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최고의 무기가 ‘인권’이 되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이 이 시대에 불의한 법이 되었습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입니다. 공동체 속에서 태어나서 길러져서 자라고 살다가 죽음을 맞습니다. 이 가운데 성도들은 두 개의 공동체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 교회 공동체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공동체입니다. 이 공동체 속에서 각자가 자기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을 믿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작게는 가정이 행복하고, 교회는 부흥하게 되고, 크게는 이 도시와 나라가 평안하게 됩니다. 욥기 6장 6-10절의 말씀입니다. 6.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7.내 마음이 이런 것을 만지기도 싫어하나니 꺼리는 음식물 같이 여김이니라 8.나의 간구를 누가 들어 줄 것이며 나의 소원을 하나님이 허락하시랴 9.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 10.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욥이 환란 중에 낙심되어 기도할 마음을 잃어버리자, 곧 맛을 잃어버린 사람이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함으로서 그 지위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사람들 속에서 은혜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III.어떻게 섬길 것인가
얼마 전 동덕여대에서 일어난 일들이 계속 언론에 나오고 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동덕여자대학교가 남녀공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문때문이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학생들이 대학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을 때, 공식적인 사항이 아님을 알았지만, 이미 많은 학생들의 반발로 이어졌습니다. 이에 11월 12일 학생들은 소통이 부족하다면서 반대 시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내에서 진행 중이던 취업박람회 기물을 파손하고 졸업 연주회 장소를 점거하여 졸업생들의 주요 일정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학교 피해액이 최대 54억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학생들의 심정에 대해서 이해하면서도 사회적으로 공감을 받지 못해 싸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는 방식의 문제 때문입니다. 의견수렴을 통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폭력과 파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이런 방식이 통했던 때가 있었는데 혐의가 씌워지는 순간,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단 혐의가 의심이 되면 그것은 격한 감정을 일으켜서 집단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웠습니다. 혐의가 무혐의로 끝나도 이미 감정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사실과 아무 상관도 없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결국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된 해법으로 사회를 망가트리게 됩니다. 이번 동덕여대 사태는 우리 사회 집단들이 여러 번 광장이나, 선거, 임금협상을 타결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이제는 더 이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가지 더 가슴이 아픈 이유는 어린 여학생들이 집단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집단 이데올로기의 특징이 폭력과 투쟁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3․1운동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평화운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3․1운동의 배후에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있었습니다. 천도교인들이 주도했는데 역부족이라 기독교인들을 초청합니다. 이에 기독교인들이 종교를 떠나서 만세 운동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 불교계 대표인 한용운이 참여하며 함께 3·1운동을 준비합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마도 안될 말일 것입니다. 날짜가 3월 1일이 된 이유가 2일이 주일인 관계로 토요일인 1일날 “대한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내부에서는 민족운동이, 외부에서는 일본의 무단통치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인들이 주도한 3․1운동은 전 세계에 비폭력 평화운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상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고. 그와 같은 길을 로마서 15:1-6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6 1.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5.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6.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우리를 통해 이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속히 오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