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주일설교 "부부학교8 (사랑의 관계)" 아가 2:7~15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부부학교 IIX(사랑의 관계)
아가 2:7-15
7.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8.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15.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사슴과에 속한 노루는 이스라엘을 포함한 동유럽부터 아시아에만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백두산부터 한라산까지 일찍부터 노루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루와 얽힌 사연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상북도 옥계에 사시는 이동순 할머니가 노루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습니다.
날 샐 무렵
마당에 인기척이 들려 나가보니
큼직한 노루가 서 있더니
옴마야
지캉내캉 서로 놀래
그냥 마주보고 멀뚱 섰는데
제풀에 놀랜 노루가
앞발굽으로 마당을 박차더니
장독대로 뛰어드는 기라
그 바람에
내 시집오던 해
일부러 장만해온 옹기를
와장창 깨어놓고
비행기처럼 몸 솟구치더니
흙담 너머로 풀쩍 뛰어 달아나디더
노루 섰던 자리엔
발톱 긁은 자국 남아있고
노루 타넘은 담장기와 다 부서지고
장독대 여기저기엔
빠진 털만 가랑잎처럼 우수수
흘려놓았디더
내 살아온 게 요 모양 요 꼴이다 싶어서
나는 깨진 옹기를 들고 우두커니
노루 간 곳만 봤니더
한국의 정서에서 노루는 애잔함과 쓸쓸함을 상징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아가서는 전체가 8장 118절로 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에 대한 말이 64번이나 나오는데 이는 남녀간의 사랑을 뜻합니다. 아가서를 쓴 솔로몬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자기의 사랑을 맹세합니다. 이는 솔로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술람미 여인에 대한 상징입니다. 노루와 들사슴으로 생각한 이유가 8절과 9절에 나옵니다. 아가 2:7-9 7.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 너희에게 부탁한다 내 사랑이 원하기 전에는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지니라 8.내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오는구나 9.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서 우리 벽 뒤에 서서 창으로 들여다보며 창살 틈으로 엿보는구나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노루와 사슴에 대한 우리와 이스라엘의 정서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예루살렘 딸들에게 부탁하는 7절의 말씀입니다. 노루와 사슴을 두고 부탁하는 이유를 권혁승 교수는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사랑의 지연성입니다. 사랑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거나 서둘러서는 안되고, 있는 그대로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 자체로 사랑의 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두 번째는 오직 술람미 여인만이 사랑하는 사람을 깨울 수 있다는 관계성이 들어 있습니다. 오직 솔로몬만이 술람미 여인의 사랑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사랑을 독차지한 술람미 여인과 항상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10절로 14절의 말씀입니다. 10.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1.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12.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13.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14.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지난 7번의 부부학교에서 나눈 모든 관계의 중심은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어디든 함께 동행할 수 있습니다. 언약으로 헌신된 부부는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서도 사랑을 속삭입니다. 이처럼 사랑에 충만한 솔로몬도 사랑으로 충만한 포도원을 허무는 여우만큼은 잡으라고 말합니다. 아가서의 말씀처럼 가정을 허물어트리는 여우가 존재합니다. 부부가 가지는 잠자리는 하나님이 열어주신 축복의 통로입니다.
시편 127:1-5 1.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2.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3.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4.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5.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그들이 성문에서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자녀를 낳고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부부들의 잠자리는 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의 집에는 삼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인 엘이 자녀가 없이 죽자, 동생 오난이 형수인 다말과 잠자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동생이 형에게 양자를 보내는 제도가 있었던 것처럼 자녀 없이 죽은 형과 형수를 위해서 고엘의 의무를 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난은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땅에다가 설정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악한 일을 한 오난을 심판하셨습니다. 부부의 잠자리는 영적인 관계까지 포함됩니다.
고린도전서 6:18-20 18.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19.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어떤 자매가 주일마다 커피숍에 앉아서 길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 보았습니다. 이 자매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결혼이나 가족은 가부장제에 뿌리가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성적인 자유를 누려야만 하고, 성경이 기준이 너무 현실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도 놀랄 정도로 어느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이 교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습니다. 이 자매는 커피숍에서 엄마와 아빠들이 차에서 내려 아이를 안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과연 내가 저 사람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이번에 소록도에 자장면 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한센병 환자들이 있었습니다. 한센병은 이미 의학적으로 완치가 가능한 병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전히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혼자 있는 쥐는 무리를 지은 쥐보다 약물에 쉽게 중독이 되었습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전쟁을 모르는 일반인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살고, 혼밥, 애완돌을 키우는 핵개인 시대로 가고 있지만, 절대로 개인이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입니다. 가족들이 모두 개인화되었기 때문에 가족 안에도 여전히 외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가정의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이나 교회나 그 본질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통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는 죄와 허물로 가득하지만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가정의 허물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나간 족보입니다. 다윗의 가문을 통해서 오신 예수님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셨습니다.” 요한복음 1:13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오신 것은, 육신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혈통으로는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친구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 컨퍼런스에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은 남성들을 위한 컨퍼런스였기 때문에 결혼 생활의 즐거움과 성적 유혹을 이기는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준비한 말씀이 잠언 5:18이었습니다. 잠언 5: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리고 아가서의 말씀들도 준비해서 강단에 올라갔습니다. 강단에 올라가서 보니 그 자리에는 모두 88세 이상의 할아버지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연세에도 힘이 넘치시는 분들이 있지만,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지팽이가 없으면 걸을 수 없고, 나는 솔모몬처럼 살끼라고 모인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씀을 준비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목사님은 준비한 말씀을 강단에서 열심히 전했습니다. 말씀을 전한 후에 강단에서 내려왔을 때 한 어르신이 보행기를 의지해서 목사님께 나왔습니다. 그 어르신은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고맙구먼, 자네는 메마른 뼈들에게 다시 ‘살아나라’, ‘살아나라’라고 외쳤던 에스겔 선지자 같았네.”
성경에서 알게되다 라는 ‘야다’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야다’는 부부가 잠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일상생활에서도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사랑으로 감싸 안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사랑은 한 때 두 때 반 때와 같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과 부부는 언약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부부는 친밀하면서도 다른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부부는 성숙해져가는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부부는 동행하는 관계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부부는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인생을 살아보신 어르신의 말처럼 우리는 온전히 가족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요한1서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그리고 자신의 가정 안에 머무는 것을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이 우리 모든 가정들 안에 함께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