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22 주일설교 l "은혜의 도구"요한복음 13:3~15 l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은혜의 도구
요한복음 13:3-15
3.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I.북한선교주일
오늘 6월 22일은 북한선교주일입니다. 우리는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여전히 분단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분단으로 인해서 많은 갈등과 불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북한은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고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다가 최근에는 최신식 구축함과 잠수함을 건조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북한은 전쟁의 힘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2장 3-4절 말씀입니다. 3.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4.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실제로 전쟁을 앞둔 히스기야에게 선포된 말씀이었습니다. 앗수르 왕이 히스기야를 치러 왔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9:31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니다 하니라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 반드시 이루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주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II.수건과 대야
우리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3회 수건과 대야 전국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게 됩니다. 수건과 대야를 섬기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수건이라는 도구에 대해서 새로운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수건하면 대부분 송월타월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수건은 다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수건의 은혜가 무엇인지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수건, 페에르입니다. 페에르는 머리에 쓰는 두건 또는 수건으로 ‘아름다움으로 옷을 입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페에르는 허물을 감싸고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했습니다. 세마포로 만들어진 이 고귀한 수건 페에르는 대제사장이나 제사장, 남자나 여자 할 것 없이 모두가 사용했던 수건입니다. 특히 신랑들은 결혼의 기쁨을 나타내는데 수건을 사용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슬픔을 당한 자에게 수건을 주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했습니다. 이사야 61:3의 말씀입니다.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화관이 곧 수건인데 시편 32편 1절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또 다른 수건에 대한 다른 말씀은 에스겔서 24장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에스겔의 아내를 부르셨습니다. 에스겔은 아내의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애도를 표하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도 못했습니다. 대신 에스겔은 죽은 아내의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그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24:22-23] 22.너희가 에스겔이 행한 바와 같이 행하여 입술을 가리지 아니하며 사람의 음식물을 먹지 아니하며 23.수건으로 머리를 동인 채, 발에 신을 신은 채로 두고 슬퍼하지도 아니하며 울지도 아니하되 죄악 중에 패망하여 피차 바라보고 탄식하리라 하나님은 회칠한 무덤같이 수건으로 감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지적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아내의 수건은 이스라엘의 죄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구약의 수건은 영광을 나타내거나 허물을 감추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의 인물들 중에서 이 수건을 가장 은혜의 도구로 사용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의 얼굴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주할 때는 수건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는 수건을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는 대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대면할 수 없어서 수건을 사용했습니다. 모세에게 수건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 역설의 도구였습니다. [출애굽기 34:33-35] 33.모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34.그러나 모세가 여호와 앞에 들어가서 함께 말할 때에는 나오기까지 수건을 벗고 있다가 나와서는 그 명령하신 일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며 35.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신약성경에서 수건을 은혜의 도구로 가장 잘 사용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겉옷을 벗으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이 때 사용한 수건은 렌티온으로 아마포입니다. 아마포는 종들이 일하고자 할 때 몸에 걸치는 수건입니다. 종들이 주인을 섬길 때 몸에 걸치던 것이 수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 위하여 겉옷을 벗고 종의 옷을 걸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벗으셨던 겉옷은 매우 중요한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슬픔의 표시로 겉옷을 찢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믿지 않는 고린도 사람들 때문에 겉옷을 벗고 옷을 떨기도 했습니다. 둘째, 사람들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길에 겉옷을 깔아 드렸습니다.(막 11:7) 겉옷을 내어주는 것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조롱하였다. 셋째, 겉옷인 하마티온은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기우는 자가 없는데 왜냐하면 새것이 낡은 것을 당기어 더 헤어지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겉옷은 이내 낡아지는 것으로 유한한 생명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반대로 겉옷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냅니다. 혼인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공의의 예복은 갖추어야만 합니다. 이사야 61:10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복은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예수님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행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3:4-8]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주님은 제자들과 서로 상관하기 위하여 수건으로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여기서 ‘상관하다’라는 말 메로스는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몫, 분깃,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12지파를 의의 기업으로 삼으신 것 것처럼 예수님도 모든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몸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발을 씻겨주신 교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13-16의 말씀입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그러므로 23회 수건과 대야의 사역은 정말 중요한 은혜의 사역입니다. 이번에 모이는 약 74개의 교회들이 도움을 받아 서로 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고 사랑 안에서 스스로 자립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창민교회 성도들이 연합하고 믿음의 분량을 잘 지켜서 언제까지나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주의 일에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이 모든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모세와 같이 우리도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 수건이 벗겨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끝으로 고린도후서 3:16-18의 말씀입니다. 16.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겨지리라 17.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가 발을 씻을 뿐만 아니라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마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