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6 주일설교 "두 세 증인" 열왕기상 21:1~16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두세 증인
왕상 21:1-16
1.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7.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이르되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8.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
9.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에 높이 앉힌 후에
10.불량자 두 사람을 그의 앞에 마주 앉히고 그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그의 성읍 사람 곧 그의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이 이세벨의 지시 곧 그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때에 불량자 두 사람이 들어와 그의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언을 하여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그를 성읍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I.갈등과 문제
최근 유명한 훈련사인 강형욱씨가 큰 이슈입니다. 주된 내용은 그에 대한 서로 상반된 증언입니다. 훈련사인 그의 인생에 중대한 문제를 만나게 되었고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핵심은 그의 인성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를 위해서 강형욱씨의 해명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 눈에 들어오는 내용이 있었는데 레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레오는 어릴 때 강형욱씨가 키우다가 8년간 과학수사대 경찰견으로 활약했습니다. 경찰견에 은퇴한 뒤에 다시 강형욱씨가 돌보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에 레오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안락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은 레오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강형욱씨는 이 말을 듣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가 생각하면 자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 다시는 자신이 꿈꾸었던 훈련소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서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지금 강형욱씨가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는 이 과정을 통해서 성공한 훈련사가 아니라 더 멋진 훈련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을 하던 하지 않던 ‘나는 누구인가’라는 이 문제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여지는 모습을 통해서만 알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대심방 때 “국수를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이 점심 저녁으로 국수를 대접하셨습니다. 그렇게 매일 국수만 잡수시던 목사님께서 결국에 “김치에 밥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페르소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페르소나는 연극을 할 때 썻다 벗었다 하는 가면을 뜻합니다. 칼 융은 가면 뒤에 감추어진 얼굴처럼 사람의 인격도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람의 인격을 페르소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는 모습보다 보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인물의 정확한 위인전기보다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을 담은 연극무대나 드라마 한 편에 인간에 대한 더 많은 진실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서로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고 갈등하게 됩니다. 갈등과 문제가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다른 부분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II.나봇의 포도원
나봇의 포도원 사건은 아합과 이세벨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이전에 아합은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원수 벤하닷을 풀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서 아합에게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아합은 마음이 답답하여 사마리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봇의 포도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최종 시험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시험하셔서 나의 중심을 보게 하십니다. 시편 139편 23절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좋은 조건으로 사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나봇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지키는 자였습니다. 레위기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나봇은 하나님이 금하신 조상들의 유산을 왕에게 팔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돈으로 살 수 없었던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해했습니다. 근심하고 답답하다라는 ‘사르 자에프’는 골이 나서 뿌루퉁하여 투정을 부리는 것을 표현합니다. 아합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자 식음을 전폐하였습니다. 아합의 투정을 받아 준 이세벨은 율법을 이용해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민수기 35:30에 보면 사람을 죽일 때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이세벨은 아합의 이름으로 이스르엘 성읍의 장로들과 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거짓 증인 두사람을 세워서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여 죽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편지를 받은 장로들과 귀족들은 편지 내용대로 불량배 두 사람을 세워서 나봇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나봇의 포도원을 선물하였습니다. 아합이나 이세벨은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이용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이들에게 하나님은 필요할 때 부리는 신들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아합과 이세멜의 명령을 받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귀족들도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셨는데 우상을 숭배하던 아합과 이세벨은 스스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살아있는 우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봇은 이들을 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부흥의 거룩한 피를 흘렸습니다.
III.참된 증인
우리는 누구나 페르소나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거하시는 진리의 영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께서 올해 제게 가장 주목하게 하시는 말씀이 고린도후서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4:6-10 5.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또한 우리가 진리의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의 가 누구인지를 가장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육신을 따르는 우리와 주를 따라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이중적인 페르소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6장의 말씀입니다. 고후 6:1-10 1.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그 어디에도 이보다 더 이중적인 페르소나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한 성도 두세 사람을 통해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마태복음 18:19-20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거짓된 증언을 판치는 세상 속에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참된 증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증인들을 통해서 선포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은혜의 직분을 감당하는 두 세사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