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5 주일예배 l "화목하는 사람" 로마서 12:14~21

이종명 0 52

 2025.10.05 주일예배 l "화목하는 사람" 로마서 12:14~21ㅣ설교:장귀삼 담임목사

 

화목하는 사람

로마서 12:14-21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똑같은 능력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폴리네시안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같았지만, 폴리네시안 언어보다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더 다양한 기회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세계적인 경제학자인 리처드 로티는 영어를 사용하는 8%의 인구가 전세계 4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한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부를 이룬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독 ‘유대교’와 ‘기독교 사회’가 발전하는 이유는 그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린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회보다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회는 감사가 생활화되었기 때문에 더 빠르게 발전하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훗날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기독교 승리의 발자취”라는 책을 펴 냈습니다.

 

성도의 언어는 성도의 믿음이자 능력입니다. 그중에서도 축복의 언어는 오직 성도들만의 능력입니다. 죄를 다스릴 때 사용하는 동해보복법은 “눈에는 눈으로 생명은 생명으로”입니다. 은혜를 구할 때 사용하는 복 역시 “축복은 축복으로 저주는 저주로 임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가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야고보서 2:22-24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야고보 사도의 말씀대로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행함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축복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누군가를 온 맘과 온 힘을 다해 복을 빌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히브리어로 “엎으려 무릎을 꿇는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약대가 엎드려 무릎을 꿇어야만 주인을 등에 업을 수 있었습니다. 축복은 주인을 등에 업은 약대처럼 상대방 앞에서 엎으려 무릎을 꿇어야만 베풀 수 있습니다.​ 한 학생이 학교에서 친구와 싸우고 와서 잔뜩 화가 나서 집에 왔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학생은 저녁을 준비하는 어머니에게 쉴 새 없이 친구의 험담을 늘어놓았습니다. 한참을 듣고 있던 어머니는 아들을 데리고 뒷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친구 욕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넌 정말 나쁜 놈이야~” 산에서 친구를 욕하자 그 소리가 그대로 자신에게 다시 메아리쳐 왔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번에는 친구에게 추복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God Bless you!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길 바란다” 이번에도 동일한 소리가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아무말 없이 아들을 다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학생은 이 때의 경험으로 “나의 입술에서 나온 말은 반드시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은 이후에 되도록 다른사람을 축복하기로 결단을 합니다. MGM이라는 대형 영화사를 세운 루이스 메이어의 경험입니다.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말은 다시 돌아와 나를 저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말은 다시 돌아와 나를 축복하게 됩니다. 사람이 믿음 있는 말을 하면 반드시 믿은대로 되는 황금률입니다. 


로마서 12:14 14.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역설을 발견합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박해’라는 말 ‘디오코’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첫째, 군사적 의미로 전쟁 중에 적의를 가진 적군에게 쫓기는 것을 말합니다. 둘째, 종교적 의미로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가 올바른 길을 갈 때는 언제나 박해를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5:11-12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성도들이 박해를 당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을 연단하는 도구가 됩니다. 오히려 박해를 통해서 주님의 도우심과 구원의 능력을 크게 경험하게 됩니다. 오히려 믿음의 박해를 당하지 않으려고 할수록 믿음에서 멀어집니다. 디모데후서 3:12-13 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13.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다산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조가 죽고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 신자였던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습니다. 18여년 동안 유배를 당한 것은 서용보가 정약용이 암행어사 시절 서용보의 비리를 고발한데 앙심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다산은 끝날줄 모르는 유배기간동안 믿음을 가지고 목민심서와 오천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정약용은 믿음의 박해를 통해서 다산학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한 중학생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발에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병원에 가도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점점 더 통증이 심해져서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학생은 기도원에 들어가 하나님께 40일 작정 기도를 드렸습니다. 학교도 다닐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만 했습니다. 집에 있는 동안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목회 사역을 하다가 은퇴를 앞두고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발 뒤꿈치에 작은 철사가 박혀 있었습니다. 수술을 받자 오랜 세월 괴롭혔던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목사님의 말입니다. “이 작은 철사가 나의 자랑입니다. 나는 나를 너무나 잘 압니다. 나는 이 철사가 아니었다면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성경을 붙들고 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성경주석을 하신 이상근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이 이상근 목사님이 하루는 미국 프리스턴 신학교 길레스피 총장과 함께 남대문 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온갖 물품이 가득한 시장 바닥에 앉은뱅이 한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다리가 없고 대신 고무판이 싸여 있었고 두 손으로 땅을 기면서 수건 몇장을 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배 밑에 있는 작은 카세트에서 찬송이 흘러나왔습니다. 길레스피 총장은 신기해서 이유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이 앉은뱅이에게 이유를 대신 물어보았습니다.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가 시장에 나와 있는 목적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길레스피 총장은 장신대를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여러분은 목회할 때 신학적 지식으로 하지 말고 남대문시장의 앉은뱅이 전도자의 정신으로 하기 바랍니다.”라고 축사를 했습니다.

 

도대체 믿음으로 박해를 받아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하는 자들의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아니! 우리 성도들에게 다시 질문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단 말입니까?

15.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축복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즐거움과 위로를 나누면서 마음을 함께 하게 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원수를 갚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한 모든 일 곧 축복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우리가 축복한 일의 열매는 화목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조도에 계신 11분의 목사님이 수건과 대야를 참여하면서 이번에 조도 자장면 봉사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조도 지역은 교파를 초월한 교회 연합회 모임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국민일보에도 소개된 너무나 아름다운 사연이 있습니다.

“전남 진도군 진도항에서 배로 40분 이상 들어가면 조도군도를 만날 수 있다. 작은 섬 150개가 새 떼처럼 흩어져 있다고 해서 조도(鳥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말 그대로 아름다운 다도해지만 인구는 이천명 남짓, 오후 5시면 배가 끊기는 외로운 곳이다. 이곳에도 한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들이 둥지를 튼 가운데, 인근 8개 교회사모들이 모인 조도 사모 기도회가 20년째 선교의 사명을 이어가고 있다. 조도 사모 기도회는 2001년 조도중앙교회에 부임한 강미자 사모님으로부터 출발했다.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모님들이 속마음을 터놓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모임이 되었다. 상조도순복음교회 김영숙 사모님, 상조도침례교회 김성혜 사모님, 옥도교회 이용자 사모님, 조도순복음교회 김추향 사모님, 곤우교회 엄순옥 사모님, 화평낙도선교센터 이제라 사노미, 나배도교회 김혜영 사모님이 구성원이다. 강미자 사모님은 처음에 왔을 때는 서로 대면대면 하면서 지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목회의 어려움부터 남편과 자녀의 걱정까지 터놓고 기도한 것이 벌써 20년이라면서 사모님이 친해져서 목사님들도 깊이 친해져서 같이 동역하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섬 사역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고된 일이다. 사모들이 아이 돌보미나 방과후학교를 하면서 돈을 벌었다. 수시로 섬을 덮치는 태풍은 교회와 사택을 망가트렸고 제대로 된 병원도 없어서 아픔을 참아야 했다. 교회가 없는 섬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낙도선교를 감당하는 이제라 사모님은 수없는 고난을 겪었다. "망망대해에서 배가 고장나기도 하고, 안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를 수없이 경험합니다. 그래도 우리를 기다리는 서너명의 어르신을 생각하면 배에 오를 수 밖에 없어요. 한 영혼이 하나님을 알게 된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험한 사역 속에서도 이어진 기도회는 너무나 많은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했다. 사모님들의 동역은 기도회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8개 교회 중에 3개 교회만이 교회학교가 있었다. 사모님들이 함께 교회학교를 섬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조아조아 주일학교로 연합교회학교로 모이게 되었다. 연합으로 모이니 8명의 사모님이 각자 가진 은사를 사용해서 아이들을 전문성 있게 돌보게 되었다. 아이들도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더 좋아하고 잘 모인다. 믿음으로 기도하보니 생각하지 못한 일들도 감당하게 된 것이다. 조도 사모 기도회는 23년 10월 20일 전남 목포사랑의교회에서 20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지난 20년간 조도를 거쳐갔던 목사님과 사모님들도 모두 참여하여 큰 은혜를 경험했다. 사모님들은 복음화율이 10%에 불과한 조도면에 복음이 파도처럼 넘치는 것을 꿈꾸고 있다.

 

개인적으로 저는 하나님께서 이번 봉사를 통해서 내년도 수건과 대야와 이번 50주년 기념예배를 준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전도를 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화목하는 사람입니다. 믿음 결국은 구원인데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과도 화목합니다. 우리 온성도들이 오늘 예배를 통해서 화목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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