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5 주일설교 "은혜의 장소" 시편 73:12~17 설교: 장귀삼 담임목사
은혜의 장소
시편 73:12-17
12.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13.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14.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15.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16.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I.은혜의 장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른 백성과 구별하신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편 50장 5절에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만나 주시기 위해서 성전제사를 요구하셨습니다. 성전은 참으로 은혜의 장소였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소원대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 9:3 “네 기도와 내 간구를 내가 들었으니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 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하나님은 성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성전은 예배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누구든지 와서 기도하는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개인의 건강과 사업과 자녀들과 문제들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쌓이면 쌓일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을 강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은혜를 경험했고, 믿음이 더 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정하신 장소는 성전입니다. 이사야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기도가 응답되는 곳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향한 제사도 중요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기도도 중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에 기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레미야 29:11-13]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야의 간절한 부르짖음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이유로 예루살렘을 재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느헤미야가 총독으로 와서 52일 만에 무너진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을 재건하면서 하나님께 예배가 회복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느헤미야 12:43-47] 43.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44.그 날에 사람을 세워 곳간을 맡기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돌릴 것 곧 율법에 정한 대로 거제물과 처음 익은 것과 십일조를 모든 성읍 밭에서 거두어 이 곳간에 쌓게 하였노니 이는 유다 사람이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기 때문이라 45.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46.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47.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하나님은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와 같이 성전에서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느헤미야를 통해서 찬송과 기도가 회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기도를 들으시지만 특히 우리의 마음을 구별하여 성전에서 기도할 때 들어주십니다.
II.아삽의 고백
다윗은 왕이 되자마자 예배를 회복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서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찬송들을 남겼습니다. 또한 다윗을 도와 예배를 섬겼던 인물들에게도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 사람들 가운데 아삽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아삽의 이름은 “모으는 자”라는 뜻입니다. 아삽은 예루살렘에 언약궤를 옮길 때 헤만, 에단과 함께 찬송을 담당했습니다. 아삽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 비파와 제금과 수금과 나팔을 포함한 120명의 찬양대를 인솔했습니다. 아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나타내는 일을 했습니다. 아삽의 후손들은 느헤미야 때까지 찬양하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던 아삽이었지만, 그도 크게 넘어질 뻔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상황과 문제들을 만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사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할 때가 있습니다. 아삽이 딱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아삽은 말씀을 지키는 자신은 고통을 받고, 악인은 형통한 것을 보았습니다. 악인의 형통은 곧 의인의 고난을 뜻합니다. 아삽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반대되는 이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크게 낙심되어 시험에 빠질 뻔 했습니다. 시편 73:1-3의 말씀입니다. 1.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2.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3.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우리도 기도가 응답이 없고, 상황은 악화되고, 악한 자들이 잘될 때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 아삽은 악인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해서 악인의 길을 따라갈 뻔했습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이 살면서도 전혀 고난을 받지 않았습니다. 아삽은 악인들을 보면서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일이 무가치하게 느껴졌습니다. 시편 73: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심지어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한다고 느껴졌습니다. 시편 73:14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았도다
매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아삽의 마음에는 질문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왜 악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고난을 받는가?” 아삽은 고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예배인도자로서 자기 입술을 굳게 지켰습니다. 시편 73:15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 그러나 그가 말을 아끼면 아낄수록 고통은 심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삽은 평소와 같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던 어느날 드디어 응답을 받게 되었습니다. 시편 73:16-17 16.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17.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두신 곳,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 수 있는 성전에서 기도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삽이 받은 응답은 그가 늘 알고 있던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진리는 자신을 무지한 짐승이라고 말할 정도로 익히 알던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말씀이 아삽의 믿음과 함께 역사할 때 회복되었습니다. 의인은 악인의 형통을 뛰어넘는 형통 곧 참된 안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4:1-2] 1.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2.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아삽이 진리의 말씀을 깨달았을 때 그에게 참된 안식이 찾아왔습니다. 아삽이 깨달은 진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악인들의 길은 반드시 망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오직 의인의 길을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아삽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자, 하나님이 자신이 넘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형통할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지만, 정말 은혜는 내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항상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의인의 형통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살아 역사하는 것이 은혜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GOD의 멤버 중 김태우 형제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친한 사람이라도 자기에게 전도를 하면 너무나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태우 형제가 결혼을 했는데 장인이 독실한 크리스찬이셨습니다. 어느날 장인어른이 태우형제를 한국의 성탄절에 캐롤이 사라졌으니 사위가 나서서 캐롤송을 만들어보라고 했습니다. 장인어른의 말에 순종해서 녹음실에 앉았는데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할지 고민이 됬습니다. 그래서 한 번도 기도한 적이 없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이걸 내가 하는게 맞나요?” 그렇게 기도하고는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 친한 음악인들을 다 불러 모았는데 자기를 빼고 다 크리스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야! 신기하다”하고는 캐롤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5곡을 삼일 만에 작곡하고, 이틀 만에 편곡을 하고, 사람들을 섭외해서 앨범을 십일만에 마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태우 형제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태우 형제가 예수님을 믿게 된 이유는 앨범을 만들 때 너무 형통해서, 다시 말하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해 주셔서 믿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태우 형제가 예수님을 믿은 것은 주의 일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기 자신을 보고 믿게 되었습니다. 무신론자인 자기가 정작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프리 쇼”의 호스트인 김창옥씨의 말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에 보면 사람의 목적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사람의 존재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나와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오해하는데 이 말의 원래 뜻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라는 말은 깻잎 한 장 차이인데 사실은 하늘과 땅처럼 엄청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아이들이 엄마를 기뻐하는 것”과 “엄마를 기쁘시게 하는 것”의 차이라고 설명해요. 그러면 엄마들이 “강사님 아이들이 저를 기뻐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어요?”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면 엄마들에게 오늘 저녁에 집에 가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만약 엄마가 저녁에 집에 들어갔는데 집안 분위기가 환해지면 그 집은 엄마를 기뻐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어떤 집은 엄마가 집을 나가면 환해지는 집이 있어요. 엄마가 집을 나가면 애들도 환해지고 남편도 환해지고, 막 난리가 나는 그런 집은 엄마를 기쁘시게 하는 집이라는 겁니다. 기쁘시게 하는 건 벌벌 떨면서 엄마를 기쁘게 하려는 것이고, 기뻐하는 것은 엄마가 있어서 너무 너무 기쁜 거에요. 기쁘시게 하려는 것과 기뻐하는 것은 완전히 것입니다. 이 단어 하나로 우리의 신앙이 완전히 달라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악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하나님도 대적합니다. 그러나 오직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됩니다. 의인의 진정한 복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시편 73:26-28] 26.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7.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28.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아삽은 참으로 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피난처가 되시는 주를 가까이 함으로 복있는 자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